벌써 한 달이 지났다.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한 달이라니. 시간이 이렇게 빠른 건지 몰랐다. 특히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JS, TS, Nest, Prisma를 매일 붙들고 있으니 생태계 자체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버겁다.
그래서 이 글도 많은 시간을 들이기 어려워 조금 러프하게 전달될 수 있다. 양해 부탁한다.
이전에 취준 회고를 쓴 적이 있는데, 이 글은 그 후속편이라기보다는 독립적인 글이지만 다만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지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중간중간 드러날 것 같다.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
이전에 조금 큰 회사를 다녀본 적이 있다.
서비스 기업은 아니고 규모 있는 솔루션 기업이었는데, 답답함을 느낄 만한 게 많았다. 인턴이라는 신분이라고 많은 책임을 주지 않고, 일이 되든 안 되든 그만이라는 분위기. 회사 복지를 악용해 남들의 코어 시간을 피해 출퇴근하고 맨날 커피 먹자고 끌고 다니는 사람. 일 자체를 형식적으로 하는 사람이 꽤 보였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사는 게 일반적인 문화였다.
이게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나랑 맞지 않을 뿐이다.
많은 책임을 갖고 싶었다. 지금 젊을 때 열정을 불태우고 싶었고, 이 열정이 지금이 가장 클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점점 꺼질 수도 있으니까, 조금 고생하더라도 많이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서 서비스 기업에 특히 가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선택한 이유보다도 신입 채용이 워낙 힘들어서 결국 붙은 회사가 여기였다. 그래도 정말 가고 싶었던 서비스 기업이었고, 이전에 내가 세워둔 최소 기준 연봉도 복지를 영끌하면 맞았다. 시장이 이렇게 어려운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갔다.
결국 합격한 곳에 간 거다. 후회는 없다.
입사 전 기대 vs 실제
회사 규모가 중소치고는 꽤 있는 편이다. 대략 200~300명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름 온보딩까진 아니더라도 신입 교육을 좀 해줄 줄 알았는데… 정말 방치였다.
문서 몇 개 던져주고, 코드 보고 알아서 파악하라는 식이었다. 데일리 스크럼 시간을 빼면 사람이랑 대화할 일이 거의 없었다. AI한테 "이건 왜 이렇게 되어 있는 거야"를 반복하면서 모든 의도를 혼자 파악해야 했다. 신입이 자주 들어오는 자리가 아니다 보니 팀원들도 신입이 뭘 모르는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질문도 모든 사람이 보는 슬랙 채널에서 해야 했다. 너무 기본적인 질문일까 봐 입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이건 태도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환경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권한을 받으리라 기대는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많은 권한을 줬다. 마음만 먹으면 내가 모든 걸 날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백업을 하고 있겠지만, 어쨌든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래서 신입으로 들어와서 어려웠던 것들을 모조리 정리해 두고 있다. 신입일 때만 느낄 수 있는 점들이 분명히 있고, 기존에 익숙한 사람은 그걸 못 느끼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업무를 다 쳐내고 여유가 생기면 이 작업을 수행하고 싶다.
왜 바로 안 했냐면… 바로 일에 투입됐는데 코드 파악만 해도 여유가 없었다. 자바스크립트랑 타입스크립트 처음이었으니까.
근데 또 재밌는 게, 신입이 자주 들어오는 자리가 아니다 보니 이런 문서화 작업을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투자 대비 리턴이 적달까. 그리고 이젠 AI가 있으니 의도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시스템이 나름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신입이 적게 들어오니 투자 대비 효용이 낮고, 그러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린다. 우선순위를 너무 따지는 것도 문제지만, 오히려 이런 고민이 내가 행동을 바로 못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뭐가 정답일까. 참 어려운 문제다.
어쨌든 이건 일을 1차적으로 잘하고 나서 해야 할 부가적인 것이다. 일단 1인분 먼저 하고, 그 이후에 반영하든 고민하든 하자.
첫 번째 업무, 그리고 무력감
첫 업무다 보니 소비자 서비스보다는 백오피스 개발을 맡았다. API를 약 13개 만들어야 했다.
이 작업의 공수를 약 8일로 잡았는데, 부팀장님이 너무 많다면서 4일로 절반을 날려버렸다.
기술 스택이 아예 처음이었기에. 코드를 읽으려면 하나하나 GPT한테 문법 설명을 요청하는 식이었으니, 기존 코드를 파악하는 것도 설계를 잡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코드에 대한 오너십도 좀 있는 편이라 퀄리티를 챙기고 싶었는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야근도 진짜 거의 매일 했다.. 심한날엔 11시까지(딱 하루만)...? 물론 나름 열심히 한거같은데 결과는 아쉽게도 개판...
설계 리뷰든 코드 리뷰든, PR을 받을 때마다 탈탈 털렸다.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근데 안 울었음... 맘은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남.)
사수님한테 뿌에엥 거리면서 죄송하다고 많이 했다. 이런 무력감을 느낀 게 꽤 오랜만이었기에, 오랜만에 느껴지는 감정과 함께 좀 힘들었다.
근데 확실히 강하게 키워지는 느낌이 있다. 강하게 키워지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확 털려보면 자극이 오고 그게 더 큰 동기부여가 된다. 개발에 들어가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어떤 것들을 고려하면서 개발해야 하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역량이 더 빠르게 느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이 일하고 많이 털려보는 게 신입일 때는 오히려 이득 아닐까, 하는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
힘들고 야근할 때마다 "야근 샤갈…"을 외치지만, 취준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안다. 감정은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코드베이스를 처음 봤을 때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만들어진지 얼마되지 않아, 2년 반 정도 된 코드라 그래도 깔끔한 편이다.
물론 어느정도 간혹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눈에 띄긴하지만 이정도면 매우 굳...
그리고 장기적으로 도메인 기반으로 변경 여파를 제어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솔직히 AI 시대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딸깍 하면 어디에 여파가 나는지 알려주는 세상이니까. 물론 서비스가 진짜 커지면 그게 어려울 것 같긴 한데, 이건 내 경험이 아니라 온전히 추측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어쨌든 지금 회사가 굉장히 바쁜 편이라 이 부분을 건드릴 여유도 없다.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가 아닐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심도 있게 고민해보고 싶다. 개발할 때 모르면 안 되는 것들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 부분도 있는데, 이것도 나중에 꼭 해야 한다.
해야 할 것들은 많은데 일도 많다 보니, 지금은 그냥 이런 의욕만 갖고 있다. 꼭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술 공부에 대한 고민
요즘 AI로 배우기 정말 좋은 환경이지만, 내 코드를 책임지려면 기술 공부를 피할 수 없다는 게 아직까진 분명하다.
나도 처음엔 이제 책이나 강의를 봐야 하나 싶어서 AI로만 해결하려 했다. 근데 강의나 책으로만 얻을 수 있는 지식이 분명히 있었다. 예를 들어 특정 옵션이 기본값으로 들어가 있는 이유나, 프레임워크가 내부적으로 어떤 순서로 동작하는지 같은 것들은 AI한테 물어보면 단편적인 답만 나오고, 왜 그렇게 설계됐는지까지는 잘 설명해주지 않는다. 책이나 강의는 그런 맥락을 흐름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해의 깊이가 다르다.
새로운 환경에 가면 해당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맥락이 전혀 없다. 그래서 결국 AI를 적극적으로 쓰면서도 강의와 책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 보고 있는 건 모던 자바스크립트 딥 다이브, 인프런 Nest 강의, 이펙티브 타입스크립트를 보고 있다.
AI가 딸깍 해서 다 만들어준다며 기술 공부를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기 코드에 책임지는 환경이 아니면 괜찮다. 코드를 만들기만 하고 유지보수를 안 할 거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런 환경이 아닌데 AI의 운에 따라 개발한다면 분명 큰 코를 다칠 거다. "왜 이게 돌아가지?"를 A부터 Z까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신입 개발자라면 제발 CS든 자기 언어든, 모든 걸 근거를 가지고 했으면 좋겠다. 나름 CS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편인데도 지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근데 확실한 건,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들 1회독만 돌리면 이런 고민은 한결 줄어들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 지금만 버티자..
팀 분위기와 소통 방식
개인 DM은 금지고, 모든 슬랙 스레드에서 일을 처리해 누구나 볼 수 있게 운영하고 있다.
이 방식 덕분에 이전에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히스토리가 잘 남아 있어서 파악하기 좋았다. 근데 문제는 너무 정신이 사납다. 계속 슬랙 알림이 울리고, 내 몰입 시간이 자꾸 끊기는 느낌이다.
조직 차원에서 사람을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이 들어간 방식이라는 건 알겠고, 장점도 분명히 느꼈다. 이 부분은 내가 적응해야 한다. AI로 업무를 병렬 처리하는 것도 고민 중인데, 컨텍스트 스위칭에 적응하면 오히려 좋을 수도 있겠다.
소통은 솔직히 적극적으로 열려 있진 않은 것 같다. 이게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인데, 회사에 대해 더 알아보고 소통이 많아지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빨리 승진하든 해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근데 안 하는 이유가 또 있지 않을까. 아직 그 부분까지는 모르는 삐약이기에 일단 이 감정만 간직하고 있다.
질문하기 편한 환경인지
냉정하게 말하면, 아니다.
다음에 신입이 오면 나는 꼭 편하게 해주고 싶다. 일단 계속 관심을 갖고 물어봐주는 것. 그것만 해도 크다. 어떤 걸 고민했는지 체크리스트로 만들어두고, 새 신입이 오기 전에 시스템에 반영하지 못했더라도 적어도 문서는 만들어서 같은 질문이 안 나오게 하고 싶다.
근데 이젠 그냥 눈치 안 보고 물어보기로 했다. 개털려보니까 그냥 쪽팔리는 게 낫다.
개인주의지만, 사람은 어떨까
확실히 사람들이 낯도 좀 가리고 개인주의적이긴 하다. 근데 서비스 기업은 서비스 기업인가 보다.
기대 이상으로 사람들이 잘하고, 일을 논리적으로 처리하는 게 느껴졌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그 과정 속에서 배우는 게 크다.
이런 감정은 인턴 때는 못 느껴봤던 것 같다. 오히려 신입 위주로 굴리면서도 멋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만 잘하면 된다.
특히 코드 리뷰도 API 13개를 해야 했기에 대충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의도를 물어봐주는 점에서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내가 적극적으로 질문만 많이 하면 답변도 잘해주시기 때문에, 진짜 나만 많이 물어보면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빨리 일을 잘하는 건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 외에도 여러 시스템을 개편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수의 모든 것을 탈탈 털어먹고 성장하자.
생활과 심리
이 부분은 이전 취준 회고에서도 간단히 다뤘으니, 최신 근황만 업데이트하자.
생활과 심리는 매우 좋다. 행복하다.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싸피 탈주 기준으로 한 7kg 정도 빠진 것 같다. 확실히 취준은 정신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였다. 꾸준히 빼고 있고, 여기서 10kg만 더 빠지면 딱 취준 전 몸무게가 된다.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보자. 많이 좋아지고 있다.
"기술이 전부가 아니다"가 더 깊어졌는지
원래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당연히 기술이 전부가 아니다.
회사에서 기술 공부를 바로 활용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다만 기술 공부를 해야 논리성이 강화되고, 회사에서 어떤 선택이 합리적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기술 공부를 했던 게 1도 후회가 안 된다. 너무 좋다.
지금 고민하는 건 커뮤니케이션이다. 어떻게 하면 팀원들과 더 좋은 시너지를 만들 수 있을까. 기술력이 없었으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이것저것 하나도 신경 못 썼을 거다.
개발자의 본질은 기획의 요구사항을 컴퓨터의 언어로 번역하는 중개인이다. 그렇기에 개발은 당연히 잘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도 물론 중요하지만 본질을 잃으면 안 된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려면 개발도 잘하고 커뮤니케이션이나 그 외의 것들도 잘해야 한다. 압도적으로 잘하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기술력이 떨어지면 커뮤니케이션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취준할 때 코테와 기술 모두를 잘하는 사람은 굉장히 드문데, 뭐든 한 가지에 어느 정도 끝을 봐야 다음 단계를 신경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입에게는 여전히 CS와 기술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이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일 잘하기.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은 이게 전부다.
둘째, 지금보다 더 나은 구조를 계속 찾고 실천하기. 목소리도 꾸준히 내기. 이게 개인적으로 제일 어려워 보인다. 내가 그걸 하고 싶어도 위에서 반대하면 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유지하고 싶다.
셋째, 빨리 승진하기. 인정받았다는 의미니까.
지금은 첫 번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마치며
한 달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아직 한 달밖에 안 됐다.
모르는 게 많고, 힘든 것도 많다. 근데 취준 때의 막막함과는 결이 다르다. 지금은 뭘 해야 하는지가 보이고, 뭘 모르는지도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서툴지만 버티고 있다. 이전에 서툰 사람의 길이라고 썼는데, 그 길이 아직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다음 달엔 조금 덜 서툴면 좋겠고 하루하루 의식적으로 살며 성장하길